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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교육자료

효녀 지은(知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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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라골 작성일13-05-21 00:00 조회8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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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 지은(知恩)

효녀 지은은 한기부의 백성 연권의 딸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처녀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 어머니를 봉양하여

나이 32세가 되어도 시집을 가지 않고 밤낮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를 봉양할 것이 없어서 혹은 품팔이도 하고

혹은 동냥을 하며 밥을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날이 갈수록 피곤함을 견딜 수 없어서

부자집에 가서 몸을 팔아 종이 되기를 요청하여 쌀 10여 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해가 지도록 그 부자집에 다니면서 일을 해주고

밤이면 돌아와서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이렇게 한지 3 4일 뒤에 그의 어머니가 딸에게 이르기를 "전에는 밥이 궂어도 맛이 좋더니

요즈음에는 밥은 비록 좋으나 맛이 전과 같지 않으며 마치 뱃속을 칼로 찌르는 것 같으니

이것이 웬일이냐?" 하였다.

딸이 사실대로 고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나 때문에 너로 하여금 종이 되게 하였으니

차라리 빨리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고

목을 놓아 크게 울고 딸도 울어 길가던 사람들을 애처롭게 하였다.


이 때 화랑 효종랑이 지나다가 그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 부모에게 청하여

자기 집 곡식 백석과 옷을 실어다 주고

또 지은을 종으로 산 주인에게 몸값을 보상하여 지은을 양인(良人)으로 돌려 놓았으며

화랑의 무리 몇 천 명이 각각 곡식 한 섬씩 기증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역시 벼 500석과 집 한 채를 주고 일체 부역을 면제하여 주는 동시에

곡식이 많아서 도둑이 들까 염려하여 관리에게 병사를 보내 번갈아 지키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을 표창하여 효양방(孝養坊)이라고 하고

이어 표문(表文)을 지어 그의 아름다운 행실은 당나라의 덕화가 미쳤기 때문이라 하였다.


효종랑은 당시 셋째 재상(宰相)의 서발한 김인경의 아들이었는데

그의 어릴 때 이름이 화달(化達)이었다.

왕이 생각하기를 나이는 비록 어리나 어른처럼 보인다하여

곧 왕의 형인 헌강왕의 딸로서 아내를 삼게 하였다.


<삼국사기>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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