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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교육자료

<한국인 孝와 선비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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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로일보 작성일13-11-10 00:00 조회8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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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孝와 선비사상>

1. 韓民族의 淵源
우리 韓民族은 人類史上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悠久한 歷史와 高度의 찬란한 文化를 면면히 이어 온 東方文化의 주역이었던 위대한 單一民族이다.
그러나 有史以來 수많은 外侵으로 인하여 民族史料를 거의 泯滅당하고 이어서 中國 위주의 편중된 歷史 記錄과 日帝의 고의적인 歷史 歪曲 등으로 인하여 우리 韓民族은 燦爛했던 上古歷史를 일찍이 상실하게 되었다.
더구나 日帝 侵略으로부터 祖國이 光復된지 半世紀가 지나도록 日帝殘滓에 대한 肅淸作業이 없는 상태에서 植民地史觀에 汚染된 歷史學者들에 의하여 國史敎育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 이 땅의 民族歷史는 크게 왜곡되어 교육되고 있어 民族思想과 民族正氣는 거의 枯死之境에 이르게 되었다.
東方의 上古史를 잘 모르는 근대 西歐學者들의 說에 의하여 東方民族의 根源을 「몽고리안」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古代 東方文化를 주도하였던 民族은 「몽고리안」이 아니라 「東夷族」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東方의 「黃河文明」을 主導했던 民族은 中國의 漢族이 아니라 우리 韓民族의 祖上이었던 「東夷族」이었다. 2013-08-06_091924.jpg
「東夷族」에 대하여 中國의 史學者 鄒君孟은 “화하족은 중국 원시사회 말기에 있어서 중원의 炎帝·黃帝 집단을 기초로 하여 동방일부 夷人集團(치우와 소호 일파)과 남방 일부 묘만집단(여와와 반호 일파)을 융합해서 형성된 것이다.”이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原始社會 末期에 東夷集團이 炎黃集團에 融合되었음을 中國人들도 인정하고 있다.
蚩尤에 대하여 “치우는 어느 집단에 속하는가? 예로부터 논쟁이 분분한 문제이다. 동한의 학자인 高誘·馬融 등이 모두 치우는 구려의 군장이라고 여겼다. (중략) 근래 사람들도 모두 치우를 동이집단이라 인정하는데 예를 들면 徐旭生을 들 수 있다. (중략) 나는 기본적으로 徐선생의 견해에 동의하며 치우는 동이집단에 속한다.”이라 하였고 또한 小昊에 대해서도 “소호는 틀림없이 치우의 후예이다. (중략) 소호의 소재지 魯의 서남은 中原과 東夷집단의 교류지로서 화하족 형성의 용광로이다. (중략) 소호는 곧 少(소호)이며 또는 「金天氏」 「窮桑氏」라 한다. (중략) 소호씨는 새를 토템으로 한 씨족부락이다. (중략) 많은 재료로 증명할 때 소호씨는 魯의 서남쪽에 세거하였으니 명명백백히 동이집단에 속하는 것이다. (중략) 소호씨의 발상지와 근거지는 山東 곡부일대이다. (중략) 대문구문화는 틀림없이 이러한 기초상에서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東方 소호문화가 위주되었겠으나 中原문화의 특점도 융합하였을 것이다. 대문구문화는 中原과 東夷의 양대집단이 융합한 결정체이며 앙소·용산문화와 마찬가지로 화하족 문화중의 보배인 것이다.”이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中國의 五帝中 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小昊까지도 蚩尤의 後裔로서 東夷集團의 人物로 인정하고 있다.
臺灣의 文字學者 李敬齋는 「東夷」에 대하여 “대저 東夷는 어떤 사람인가 곧 마음이 너그럽고 자상하며 무력보다는 예술을 숭상하는 사람들이다. 그 대표 인물이 舜임금(맹자는 舜은 東夷사람이라 하였다)이다. 그는 지극히 어질고 효성스러워 남에게 천하를 양위 받을 수 있었고 또한 남에게 천하를 양위하였다. 참으로 고금중외에 더 없는 최고의 성인이었으므로 공자나 맹자가 그를 매우 찬양하였다. 그 다음이 契(설) 같은 이인데 순은 설을 사도로 삼았다. 사도는 곧 지금의 교육부장관으로 문화를 널리 보급하는 책임을 졌다. 書經에 설로 하여금 인륜을 밝히었다고 말하였다. 옛날에 창힐을 글자를 만든 시조라 하였는데 실은「契」이 곧「蒼」의 합음이다. 우리 나라 文字는 東夷人이 다 創造한 것인데 契이 널리 보급한 까닭에 造字의 功이 契에게로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여러가지 고문을 대략 비교한 즉 東夷가 문자의 지혜에 대해서는 西夏보다 우세하였으며 東夷人이 이미 교육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諸夏가 東夷의 문화를 전적으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孔子는 殷나라 사람이며 창힐의 후예요 商湯의 자손이다. 宋에서 魯로 이사하였으니 곧 지금의 상구에서 곡부로 옮긴 것이다. 곡부는 소호의 故都이며 商邱는 삼박의 중심이며 모두 東夷文化의 발원지이다. 이는 공자가 최고의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인 것이다. 동이문화는 契(설)과 공자의 두 성인을 거쳐서 선양되었으며 드디어 뛰어난 중국문화를 이룩한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東夷人이 漢字(東方文字)를 만들었고 諸夏가 모두 東夷의 文化를 받아들였고 舜 蒼詰(契) 湯 孔子 等이 모두 東夷族임을 주장하였다.
이 밖에도 中國의 많은 學者들이 中國의 古代文化는 이른바 「漢族」이 아니라 「東夷族」에 의하여 이룩되었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歪曲된 歷史 속에 살아온 우리 스스로는 오히려 漢字(東方文字)도 中國의 文字를 빌어다 쓰는 借用文字로 생각하고 대부분의 우리 文化를 中國文化가 移入된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現實임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韓民族은 지금의 鴨綠江과 豆滿江 이남의 韓半島가 아니라 遼河를 중심으로 한 滿洲벌에서 發祥하여 뒤에 黃河流域으로 進出하여 山東을 中心으로 한 中原의 黃河文明을 主導했던 大東夷族이었는데 殷나라가 멸망되면서 大陸에서 東夷族의 위세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北方에서의 夫餘 高句麗의 위세도 新羅가 唐의 세력을 빌어 꺾어 버림으로 인하여 大東夷族의 판도와 위세는 오늘날의 韓半島 안으로 위축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韓民族은 본래 광활한 大陸民族으로서 莊嚴한 氣象과 방대한 스케일을 가진 비범한 民族이요 결코 오늘날 우리가 스스로 왜곡하여 일컫고 있는 半島民族이 아니다.
잘못된 歷史觀은 그 民族의 正氣와 氣象까지도 歪曲시키고 變質시키는 것이다.

2. 韓民族의 傳統思想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東方文化의 主役이었던 大東夷族으로서의 疆域을 잃고 찬란했던 民族史를 상실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傳統文化와 思想까지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이처럼 歪曲된 역사 의식 속에 오래 생활하여 오다 보니 이 땅의 學者들까지도 東方文化의 傳統思想인 「儒學思想」이 中國民族에 의하여 이룩된 思想으로 認識하게 되었고 따라서 儒學思想의 주종을 이루는 「仁」 「孝」 「선비思想」 등이 모두 中國에서 淵源되어 이 땅에 移入된 思想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東方의 儒學思想은 堯·舜時代를 비롯하여 孔子에 이르러 확립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文獻上으로 考證하여도 사실이다.
앞에서 中國의 學者들이 주장한 바를 인용한 것만으로 보아도 堯·舜·契·湯·孔子 等이 모두 東夷之人으로 되어 있는데 儒學과 그 주종을 이루는 「仁」 「孝」 「선비思想」 등이 中國의 傳統思想으로 인식하고 고집하는 것은 제 民族의 歷史를 스스로 왜곡하고 비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安浩相氏도 “공자 유학의 뿌리만이 아니라 그것의 본 바탕과 줄거리가 또한 우리 배달겨레의 배달교(風月敎 風流敎)인 대종교(大倧敎 ;한얼사람교 한배교)로부터 되었음을 잘 알 수 있는데 …… 유학의 뿌리와 줄거리와 알맹이는 우리 배달·동이 겨레의 그것에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韓國倫理의 思想的 考察 韓國思想과 文化 第2輯)라고 論及하였다.
앞에서 인용한 李敬齋는 「可見我國文字 東夷人亦多所創造」라 하여 곧 오늘날 中國의 文字는 東夷人이 다 創造한 것이라고 考證한 것에 의하면 ‘仁·孝·士’ 等의 글자를 만든 民族이 東夷之人이니 그에 대한 思想도 中國民族이 아니라 東夷族에 의하여 확립되었음은 당연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孝」字를 文字의 발달과정으로 살펴보면 殷代의 甲骨文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周代의 金文에 이르러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秦代의 小篆體에서 字形이 통일되어 「孝」의 字形으로 갖추어졌다. 「孝」자의 뜻에 대하여 漢代의 說文解字에는 “善事父母子 從老省 從子 子承老也.”라고 풀이하였다. 곧 “愛好父母而善事父母使其悅樂”의 뜻이다.
그러나 「孝」의 字形으로부터 「孝」의 뜻을 살펴볼 때 許愼의 說을 수긍하기 어렵다. 「孝」의 字源으로 보면 반드시 子息이 자기 父母만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 아니라 老人을 恭敬하여 모시는 뜻으로 「孝」의 글자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 台灣의 孔德成도 “金石文 자료에 의하면 ‘孝’字의 본래 뜻은 연장자를 존경한다는 뜻으로 존경의 범위가 직계친족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詩經 書經 論語 孟子’ 등에 이르러 효의 행위대상 범위가 직계 친족으로 좁혀지고 ‘敬’과 ‘恒’이 孝行의 본질로 되어졌던 것이다. 그 후 儒家는 부모자식 관계를 五倫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孔子와 孟子의 뜻을 확대하여 孝를 모든 덕목의 기초로 삼았다.”(孝란 무엇인가 孝思想과 未來社會)
中國 古典에서 「孝」字가 最初로 실린 것은 書經의 堯典이라고 한다. 그러나 「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孝經의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가 될 것이다.
孔子가 늘 景慕하여 모신 大聖者의 堯·舜·禹·湯·文王·武王·周公이 모두 大孝 達孝의 人物들이다. 孔子 스스로도 “入則孝 出則弟”(論語) “子曰 : 天地之性 人爲貴 人之行 莫大於孝.”(孝經) “子曰 : 夫孝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孝經)라고 「孝」를 강조하였다.
중요한 것은 이들 大孝 達孝의 人物들이 대부분 東夷之人이라는 사실이다. 더욱 구체적인 例를 들면 禮記에 “少連大連善居喪 三日不怠 三日不解 期悲哀 三年憂 東夷之子也.”(雜記 下)라고 한 바와 같이 「孝」를 지극한 禮로써 실천한 少連 大連이 「東夷之子」였다고 한다.
「孝思想」이 우리 韓民族의 傳統思想이라는 것에 대하여 柳承國氏는 “黃海 연해주지대 요동반도 발해지역 남만주 서북 조선 일대에는 고대의 고인돌 支石墓(Dolmen)가 多數 散在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이 지석묘의 分布지대가 우리 배달민족이 살던 지역이다. 이는 다름 아닌 조상숭배의 觀念이 농후하게 있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며 孝道思想이 古代로부터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孝와 人倫社會 孝思想과 未來社會 韓國精神文化硏究院 p.15)라고 고증하였다.
「孝」에 대하여 左傳에서는 “禮之始也.”라 하고 國語에서는 “文之本也.”라 하고 論語에서는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라 하고 童蒙先習에서는 “孝爲百行之源”이라 하고 孝經에서는 “夫孝德之本也”라 하여 「孝」를 東方의 文化 思想 哲學 등의 根本으로 삼았다.

동방의 전통사상 동이족의 고유사상

이처럼 유구한 역사로 이어 온 東方의 孝思想을 古代 西歐社會에서는 확실한 存在를 찾아보기 어렵다. 柳承國氏의 考證에 의하면 18세기에 出版된 英語辭典에 「孝」를 의미하는 「Filial」 또는 「Filial Piety」라는 單語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1964년에 출판된 大英百科事典에도 「Filial Piety」란 단어가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前揭書)
필자가 1989년에 러시아를 방문하여 우리 同胞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로 거기서 태어난 아들에게 「孝」를 아무리 설명하여도 理解를 못 한다면서 그 理由는 러시아 말에 「孝」라는 單語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孝」思想은 東方의 傳統思想이며 東夷族의 固有 思想으로서 곧 우리 韓民族의 자랑스러운 固有 傳統思想임을 알 수 있다.
국어대사전에는 「孝」에 대하여 “부모를 잘 섬기는 일”(금성출판사)이라고 풀이하여 놓았는데 단순히 자기의 父母를 잘 섬기는 일만이라고 할 수 없다.
孔子는 「孝」에 대하여 “夫孝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孝經)라 하여 곧 孝라는 것은 하늘의 經(道理)이요 땅의 義(義理)요 백성들의 行(常道)이라 하였다. 「孝」는 人爲的인 規定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떳떳한 도리를 백성들이 본받아 행하는 常道라는 것이다. 老子가 “道可道 非常道.”(道德經)라고 한 것처럼 「孝」는 곧 恒久不變의 常道인 것이다. 또한 孔子는 “夫孝德之本也 敎之所由生也”(孝經)라 하여 곧 「孝」는 「德」의 根本이며 가르침이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라 하고 나아가 「忠」도 「孝」에서 根源된다고 하였다.
우리의 上古史를 기록한 揆園史話의 檀君의 가르침 중에도 “爾生由親 親降自天 惟敬爾親 乃克敬天 以及于邦國 是乃忠孝.”(檀君記)라 하여 곧 네가 사는 것은 부모로 말미암은 것이요 부모는 하늘에서 내려 왔으니 오직 너의 부모를 공경하고 이에 하늘을 공경하여 나라 안에 미치면 이것이 곧 忠孝이다라고 하였다.
三國史記에 “見危致命 忠孝雙全”이라고 이른 바와 같이 일찍이 東方思想에서는 「孝」와 「忠」을 一元論的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季康子가 孔子에게 “어떻게 하면 백성으로 하여금 忠誠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까?”라고 물음에 대하여 “효도하고 자애롭게 하면 忠誠하도록 할 수 있다.”(論語)라고 대답하였다. 이는 곧 孔子도 「孝」와 「忠」을 一元論的으로 보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孝經에서 孔子는 「孝」와 「忠」의 관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하여 “君子之事親孝 故忠可移於君.”이라 하고 後漢書에서는 “是以求忠臣 必於孝子之門.”이라 하였다.
左傳에서 「孝」를 “禮之始也”라 함은 「孝」는 곧 구체적인 行爲로서 五倫의 根本이 됨을 뜻함이요 曾子大孝에 “거처가 장중하지 않으면 不孝이고 군주를 모실 때 충성하지 않으면 不孝이고 관직에 임하여 예의가 바르지 않으면 不孝이고 친구간에 신의가 없으면 不孝이고 싸움터에서 용감하지 않으면 不孝이다.”라고 말한 것은 곧 「莊·忠·敬·信·勇」의 다섯가지로써 孝를 行하는 조건을 삼은 것이니 孝에 내포된 덕목이 더욱 확장된 것이다.
또한 孔子는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論語)라 함은 儒學의 主宗을 이루는 思想의 「仁」도 「孝」에서 根源함을 뜻함이며 「仁」은 곧 추상적 개념으로서 五常의 根本임을 밝힌 것이다. 五常은 곧 「仁·義·禮·智·信」이니 鄭玄은 孝經의 序에서 「孝」를 「三才의 經緯이며 五行의 綱紀」로 六藝論에서는 「大道의 根源이며 六藝의 집합체」로 邢昺은 孝經 序에서 「孝」가 「모든 행위의 으뜸이며 五敎의 요체이다」라고 함은 「孝」를 一言以蔽之하여 「孝爲百行之源」으로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3. 선비 精神과 位相
「선비」란 말의 語源을 우선 살펴보면 高麗語를 記錄한 鷄林類事에 「士曰進寺切」로 되어 있고 鮮初 文獻으로 龍飛御天歌에는 「션2013-08-25_211103.jpg 」(儒生) 朝鮮中期의 新增類合에도 「션」(士)로 표기되어 있고 또는 「션뷔」 「션」 등으로도 표기된 것으로 볼 때 지금의 「선비」는 變音된 말임을 알 수 있다. 그 語源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고 다만 국어대사전에 “① 옛날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 ②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③ 어질고 순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금성출판사)이라고 풀이하여 놓았다.
「선비」에 대하여 琴章泰氏는 “선비(士)는 벼슬하는 사람(仕)을 뜻하며 周代 이래의 봉건계급 구조에서는 天子·諸侯·大夫·士·庶人의 五服制度속에 한 계급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士는 행정의 庶務를 맡는 하급관리로서 일정한 학식이 요구되었으면서 권력을 장악한 지배계층은 아니었다. 따라서 士는 봉건시대의 사회규범이나 지식체계를 전반적으로 담당하여 유지하는 봉사기능을 맡은 계층으로서 생산기능을 맡은 서인과 권력계층인 諸侯·大夫의 사이에 놓여 있는 중간계층이라 할 수 있다.”(義理思想과 선비精神 月刊 朝鮮 1981. 6.)라고 설명하였다.
이로써 볼 때 中國에서의 「士」와 우리 나라에서의 「선비」의 개념이 일치된다고 볼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의 「선비」라는 말은 문헌상으로 高麗시대부터 이미 사용되어 왔으며 어휘구조상 漢字語가 아니라 고유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선비」라는 말이 高麗시대보다도 훨씬 앞서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선비精神은 「孝」와 더불어 이른 시대에 東夷族의 傳統思想으로 확립된 理想精神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는 官職을 추구하면서도 官職者를 공대하는 것이 아니라 「벼슬아치」라고 일컬을 만큼 하대하고 재물을 추구하면서도 부자를 일컬어 「노랭이」 「수전노」 「졸부」 등으로 하대하고 장사로 돈을 벌어도 「장사아치(장사치)」라고 하대하고 인품을 갖추지 못하고 단순히 재주만 있어도 「재주아치」 「재주꾼」 등으로 하대하지만 「선비」는 자고로 만인의 존경을 받는 호칭이다. 우리 나라에서 「선비」로 대접받는 이의 인품을 대략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선 讀書人이어야 한다.
(2) 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志操가 있어야 한다.
(3) 身言書判을 갖추어 외모상으로도 준수해야 한다.
(4) 언제나 겸손하고 예절이 깍듯하여 타인의 모범이 되고 존경을 받아야 한다.
(5) 박람강기하여 學識이 풍부해야 한다.
(6) 가난해도 부당한 재물은 탐하지 않아야 한다.
(7) 알아도 아는 체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아야 한다.
(8) 언행에 절조와 체통이 있어야 한다.
(9) 愼獨의 자세로 언제라도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10) 굶어 죽을지언정 남에게 구차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11) 入則孝 出則弟의 孝誠과 友愛와 恭敬의 생활이 몸에 배야 한다.
(12) 巧言令色의 임기응변이나 비굴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13) 酒色雜技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14) 나태하거나 불규칙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15) 三顧草廬의 禮로써 초빙하기 전에는 벼슬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16) 泰而不驕의 精神으로 언제라도 교만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17) 곤궁하여도 義를 잃지 않고 현달하여도 道를 우선해야 한다.
(18) 항상 이웃과 화합하고 봉사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19) 국가와 民族을 위하여 殺身成仁의 精神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20)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정신으로 우선 家族의 和睦을 도모해야 한다.

이처럼 높은 道德性을 실천 덕목으로 사는 이를 「선비」로 여겨 온 우리 나라 사람들의 思考속에는 「선비」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尊敬의 대상이며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최고의 理想型인 것이다.
退溪 先生은 “선비는 禮義의 宗이요 元氣가 깃 드는 곳이다.”(退溪集)라 하였고 英祖 때의 實學者인 洪大容은 “仁義에 깊이 젖고 예법을 따르며 천하의 富로도 그 뜻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陋巷의 근심으로도 그 즐거움을 대신하지 못하며 天子도 감히 臣下로 삼지 못하고 諸侯도 감히 벗삼지 못하며 현달하면 은택이 四海에 미치고 물러나면 道를 천년토록 밝히는 것이 「眞士」이다.”(湛軒集)라 하고 鄭膺은 “한 나라에 있어서 선비란 한 사람에 있어서 원기와 같은 것이니 元氣가 흩어지면 사람이 죽는 것처럼 선비가 없어지면 나라도 망한다.”(靜庵集 附錄)고 하였다.
우리 民族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아도 국가 存亡의 국난을 당할 때마다 나라를 지킨 것은 王權이나 軍隊가 아니라 「선비精神」으로 지켜 온 것이다.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면 東夷族의 時代까지 올라가서 堯·舜·禹·契·湯·孔子 등을 들 수 있고 古朝鮮 시대의 檀君 高句麗 시대의 乙支文德·乙巴素·倉助利 신라 시대의 朴堤上·花郞徒 高麗 시대의 鄭夢周·吉再 朝鮮 시대의 死六臣·士林派의 학자들·李忠武公·趙憲·三學士·韓末의 義兵들·金九·安重根을 위시한 獨立鬪士들이 국난의 위기 속에 殺身成仁의 선비精神으로 나라를 지켜 온 대표적인 선비들이다. 이 밖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선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는 이 나라를 수 없는 外侵 속에서도 半萬年의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빛나는 單一民族의 歷史를 면면히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中國人들이 우리 나라를 칭하여 「君子之國」 「君子不死之國」이라고 하였던 것처럼 우리 나라는 곧 「선비精神」으로 나라를 다스려 오고 지켜 온 점이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른 점이요 자랑스러운 역사인 것이다.

4. 韓民族의 未來像

우리 나라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른 시대부터 百行之源인 「孝思想」과 인간으로서 누구나 추구하고 싶은 理想精神인 선비精神으로 礎石을 다져 왔기 때문에 浮沈의 유구한 半萬年 民族歷史 속에서도 東方文化의 傳統思想的 主流를 지금까지 이어 올 수 있었고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발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작가 李浩哲氏는 「孝思想과 未來社會」라는 主題로 열린 국제학술회에서 “효? 효라구? 더구나 효 사상?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저런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生活속의 孝와 그 定着方案 韓國精神文化硏究院. p.799)라고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고 솔직히 토로한 바 있다.
또한 「선비精神」에 대해서도 국어사전에 부정적인 면으로 “어질고 순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풀이하여 놓은 것처럼 오늘날 젊은이들 중에는 「선비」라고 하면 남산골 「딸깍발이」 양반을 먼저 생각하고 융통성 없고 고루하고 가난한 것을 연상하여 「선비」의 이미지가 완전히 잘못 인식되어 있음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孝思想」과 「선비精神」의 참된 본래의 모습을 찾고 이 나라를 이처럼 세계에 부상할 수 있도록 지켜 온 傳統과 歷史의 저력이 곧 「孝思想」이요 「선비精神」이라는 것을 새로이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孝는 가정윤리로부터 齊家·治國·平天下로 擴大되어 平和세계를 이룩하는 요도이다. 孝는 윤리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요 인간본성의 생명을 근거로 함으로 철학적 영역과 조상의 근원이 上帝까지를 알아야 根天之孝가 되므로 宗敎의 영역까지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이를 사회화하고 대중화하고 만인 공통으로 생활화하는 것이므로 정치적 영역과 사회 경제적 영역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孝心은 만인 공통임으로 人間共同體 人倫世界 共同體를 이루게 하는 것이 孝의 궁극적 목표이다.”(柳承國 前揭書 p.8)라고 논급한 것처럼 「孝」는 人倫의 核인 동시에 총체적인 것이므로 수직관계로 확대하면 인간의 信仰生活을 가지게 하는 宗敎의 世界가 되고 수평관계로 확대하면 汎愛思想으로 발전되어 전 인류를 平和의 世界로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孝道思想은 많이 퇴색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老父母를 극진히 모시고 아파트마다 敬老堂이 설치되어 있고 車中에서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얼른 자리를 양보하는 美德은 세계를 돌아다녀 보아도 우리나라만큼 行해지고 있는 나라가 없다.

글/陳泰夏(진태하 仁濟大學校 碩座敎授 (사)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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